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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모유 The milk of sorrow 
by 권순영

전시 개요 

갤러리 팩토리의 6월 전시는 권순영의 세 번째 개인전인 <슬픈 모유> 이다. 본 전시는 회화 드로잉 입체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검은 그림(수묵화)을 위주로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드로잉 그리고 스컬피를 이용한 소조작업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슬픈 모유>는 클라우디아 요사Claudia Llosa 감독의 영화 [슬픈 모유 The Milk of Sorrow]에서 빌려왔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작가는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은유하는 의미로서 이 제목을 쓰게 되었다.
작가는 지난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도 폭력과 희생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폭력과 희생이 발생한 사회구조적 현실을 폭로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연민과 애도에 더 마음을 둔다. 기묘한 환상성과 현실의 접점의 갖는 <고아들의 성탄2>는 그러한 마음으로 그려낸 슬픈, 거대한 참극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화사하고 부드러운 색채아래 잔혹하고 폭력적인 현실의 면면이 묘사되어 있다.
권순영의 이번전시는 타인의 고통이 소비되는 현실에서 고통을 함께하고 고통을 증명하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한다.

전시 글 
순수의 잔혹사 
노충현(화가)

원래 웃음과 눈물은 따로 있었다. 2010년 권순영은 망원역근처에서 작업실을 얻어 <뭇웃음>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즈음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얼굴에 나타났다. 그리고 하늘에는 달과 별 그리고 구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표정은 슬픔과 체념 그리고 불안 등을 내포한 기묘한 정서를 드러내는 주요한 장치로서 [뭇웃음]전부터 작가가 사용하는, 폭력에 대항하는 부드러운 전술이다. 그 시기에 그려진 <수태고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사들이 “특정한 기승전결 없이 상처와 고통이라는 정서적 상태를 형상화”되어“정서적 덩어리 혹은 심리적 유기체(이은주, 미술비평)”로 엉켜있다. <수태고지>에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와 같은, 여성의 몸이 겪어야하는 불안과 공포가 배어있다. 이 그림의 좌측 상단의 모자상을 특히 좋아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는 갓 태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유산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동화속의 왕비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모자상은 <이벤트>(2009)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슬픈 모유>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띤다.
권순영은 일반적으로 추하거나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녀가 그리는 형상의 우스꽝스러움과 추함에 대하여 내가 별 호감을 갖지 못하고 있을 때면 그녀는 이렇게 묻곤 했다. “ 왜 귀엽지 않아?”? 작가는 상투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가가 신디셔먼 Cindy Sherman의 작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자연스럽다. 관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더럽고 난폭하며 기괴하게 다룬 그녀의 방식을 흥미롭게 본 것이다. 신디셔먼이 자신의 성숙한 몸을 예술적 매체로 사용한 반면에 권순영의 분신들은 대부분 미성숙하다. 미성숙할 뿐만 아니라 적당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풍선처럼 ‘부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한 번도 몸의 무게를 얻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미성숙한 분신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과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보여준다. 고통을 느끼지만 괴성을 지르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체념과 수용의 태도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숙연하게 만든다.
권순영의 세 번째 개인전인 <슬픈 모유>전은 회화 드로잉 입체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엔 채색화 <슬픈 모유><고아들의 성탄2>와 드로잉연작 <마이 프렌즈> 그리고 안쪽공간에는 스컬피로 만든 <다락방 아이들>이 설치된다. 2층에는 검은 그림(수묵화)들이 걸린다.
전시 제목인 <슬픈 모유>는 클라우디아 요사 Claudia Llosa 감독의 영화 [슬픈 모유 The Milk of Sorrow]에서 빌려왔다. 영화는 페루의 ‘슬픈 모유병’을 소개한다. ‘슬픈 모유병’이란 임신한 여성이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하게 되면 태아에게 엄마의 공포감이 모유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성인이 된 아이는 그 성적 공포심을 물려받아 여전히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병상에 누운 엄마의 구슬프고 처연한 노래는 이 영화의 모든 정서를 함축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주인공이 겪는 정신적 심리적 장애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권순영은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은유하는 의미로서 이 제목을 쓰게되었다고 했다.
작가는 지난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도 폭력과 희생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폭력과 희생이 발생한 사회구조적 현실을 폭로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연민과 애도에 마음을 둔다. 이러한 입장은 폭력의 주체를 재현하는 문제에도 반영된다. 작가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헨리다거 Henry Darger는 폭력의 주체(성인남자)와 희생자(아이)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반면에 작가는 폭력의 주체를 거의 그리지 않는다. 첫 번째 개인전인<Flash Back>전에서는 부분적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이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폭력의 주체를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희생자에 대한 연민과 애도에 보다 치중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것이 그림을 다소 ‘감상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여기서 사용한 ‘감상적’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미술 현실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80,90년대 대학사회에서는 ‘감상적’이란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다. 긴급한 시대적 현실에서 ‘감상적’인 방식이란 사회구조적인 인식을 결여한 유약하고 비현실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미술의 현실이 이러한 ‘감상적’인 것을 허용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권순영의 회화에서 보이는 ‘감상적’인 측면을 모성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모성적’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지닌 자식에 대한 마음인 것이다. 그로인해 그림은 온기를 얻는다.
한동안 권순영은 허리통증으로 인해서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작업의 과정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 채색화를 선보인 것은 몸의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채색화는 배경을 먼저 칠한 후에 대상을 그리기 때문에 작업과정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검은 그림(수묵화)에서 배경은 마지막 과정이었지만 채색화에서는 맨 처음의 과정이 된다. 그동안 작가는 몸의 수난을 그림으로써 폭력과 희생을 말해왔다. 작가가 채색을 하기로 했을 때 몸의 색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창살화판은 몸이 되고 물감의 층은 피부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아이의 피부처럼 고운 살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싶었다고 했다. 피부의 미묘한 톤을 살리기 위해서 분무기를 이용하여 물감을 여러 번 분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혼모를 다룬 <슬픈 모유>나 악몽으로 전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다룬 <고아들의 성탄2>의 회화 속 다양한 군상들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이 울며 웃는다. 작가는 이곳에 수많은 표정을 새겨 넣었다. 잠시, 작가의 관찰하는 습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거의 어항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 반면에 권순영은 작은 어항을 바라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매일매일 변화하는 그 안의 표정을 내게 말해준다. 어쩌면 작가가 그려낸 수많은 표정들은 모두 어항의 세계로부터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아들의 성탄2>에서 볼 수 있는 리본을 맨 아이의 머리, 토끼 머리핀, 풍선가슴, 내장, 잠자리, 인형들, 정령들, 실핏줄, 눈사람들과 같은 형상들이 같은 듯 다른 표정과 동작으로 어울려 참극의 풍경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작은 세계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가깝게 다가서서 봐야만 한다. 충분히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 상처와 고통은 그렇게 묘사되어있다.
드로잉 <마이 프렌즈>는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작은 피규어figure를 대상으로 그린 것이다. 10점으로 구성된 이 드로잉은 채색화에서 볼 수 있는 인형들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순수의 이미지-피노키오 캔디 미키마우스들은 성인이 된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퇴폐와 혐오의 이미지로 전락한다. 그들의 눈동자엔 핏발이 서려있고 성기는 뭉툭하게 발기가 되어 있으며 주변에 털이 나있다. 내게는 좀 짓궂은 장난처럼 보이는, 작가의 가학적인 행위는 타락하고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영원한 순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골적으로 B급 문화의 속성을 차용하여 순수의 취약함과 성인의 세계가 지닌 속됨을 드러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층의 안쪽 공간에 설치된 <다락방 아이들>은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인형들을 만들어서 낡고 곰팡내 나는 장식장에 배치한 것이다. 인형들은 스컬피로 소조한 후에 오븐에 굽고 물감으로 채색한 것이다. 스컬피라는 재료는 미세한 표정과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 작가는 조각도를 이용하여 인형의 곳곳에 표정의 디테일을 살린다. 특히 이와 입술은 사실적이면서도 괴기스럽다. 작가는 사포를 이용하여 인형의 표면을 훼손시키고 전구의 빛을 이용하여 회화와는 달리 고통과 불안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음습한 다락방으로 겁에 질린 아이들이 숨어버리듯이 작가는 고통의 구석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권순영은 [뭇웃음]과[슬픈 모유]전을 통해서 기묘한 환상성과 현실의 접점을 모색해왔다. 작가의 작업이 시각적으로는 환상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작가도 언급했듯이 작업의 모티브는 현실적 세계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작가의 작업에 진정성과 영감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가 그려낸 고통의 감정들은 상투적이거나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대화를 소개를 하려 한다. 
해리는 묻는다. 
“이건 현실인가요, 제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가요?” 

덤블도어 교장은 대답한다. 
“물론 네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아닌 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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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작가 권순영은 1975년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후 다수의 그룹전과 2회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권순영은 자전적인 경험들을 작품의 주제로 활용해왔으나, 근작들에서는 개인적 경험에서? 발한 이야기가 상상력을 통해 진화되고 확장되어 꿈 속과 같은 새로운 판타지로 구현되었다. 권순영의 작품 속에는 미키마우스나 캔디와 같은 만화 속 캐릭터들이 작가 스스로 창조해 낸 수많은 캐릭터들과 더불어 등장하지만, 이 캐릭터들은 만화 속과는 달리 고문과 같은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당하는 잔혹한 세계 속에 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의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년기의 순진한 환상을 반영하는 듯 흰 눈이 내리거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볼들이 떠있다. 이 같은 장치는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아득한 꿈 속과 같은 상태를 만들고, 유리알 속 풍경처럼 환상적인 효과를 유발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