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맨즈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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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맨즈웨어
더글러스 건, 로이 러킷, 조시 심스 지음 | 박세진 옮김 

전세계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찾아드는 런던의 보물 창고
세계 최고의 남성복 빈티지 컬렉션 ‘빈티지 쇼룸’을 책으로 만나다

왜 오늘날 빈티지인가?
2012년 초 신세계 백화점이 영국배우 이완 맥그리거를 모델로 발탁했을 때, 백화점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은 무너졌다. 국내 백화점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남자 모델은 남성복 시장 확장의 상징과도 같았다. 클래식 복식을 탐색하면서 패션에 눈을 뜬 한국 남성들은 이탈리안 클래식을 좇던 시기를 거쳐, 보다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아메리칸 캐주얼로 관심을 옮겨갔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남자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고 옷을 사 입기 시작했다. 
‘요즘 남성’들이 갖는 패션에 대한 관심은 단지 옷을 사고 꾸미는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옷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접근한다. 그러다보니 남성적인 표현이 가능하고, 유행을 타는 패스트패션 대신 슬로우라이프와 같은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아웃도어 활동까지 품을 수 있는 빈티지 계열 패션이 각광받고 있다. 여기 그 라이프스타일의 궤적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고 남성 복식의 원형을 그대로 담아낸 책이 있다. 영국의 유명한 빈티지 콜렉터가 지은《빈티지 맨즈웨어(푸른숲刊)》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이 빈티지인가? 
책에서 말하는 빈티지 의류와 문화는 이대 앞 구제가게를 탐닉했던 X세대의 패션과 다르다. 세계 최고의 빈티지 매장 ‘빈티지 쇼룸’의 주인이자 큐레이터인 저자는 서문에서 빈티지 의류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간다. 빈티지 의류가 유행하면서 10년 전 쯤 나온 아무 옷에나 빈티지라는 이름표를 갖다 붙이려는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데 오래됐다고 빈티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빈티지 쇼룸의 컬렉션에서는 제작된 지 적어도 50년이 지났고, 그 옷이 속한 범주에서 기준이 될 만한 옷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빈티지에는 역사적 유물처럼 지나간 시대를 환기시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빈티지 쇼룸이 추구하는 빈티지 의류란 1920년대에서 60년대 사이 밀리터리웨어, 사냥꾼, 바이커 등을 위한 스포츠와 레져웨어, 철도 노동자들이 입던 워크웨어 등을 한정하는 개념이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면을 차치하더라도 1960년대와 그 이전에 만들어진 남성복을 빈티지로 취급하는 이유는 후대의 옷보다 우아하고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빈티지 의류가 탄생했던 때는 기성복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이다. 따라서 단가 문제에서 자유로웠고, 유니크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또 나일론이나 고어텍스 등의 기능성 직물이 나타나기 전이라 기능성은 떨어지지만 요즘 옷에 비해 미적으로 뛰어나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사나이의 낭만이 있었다. 저자들은 60년대 이전 남성에 비해 요즘 남자들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반면 그들이 수집한 빈티지 의류에는 스포츠를 즐기고 육체노동을 하고 심지어 전투에 참여했던 그 시대 남자들의 모험담이 깃들어 있다. 그저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시간의 흔적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빈티지의 그윽한 멋은 표면적으로 꾸미거나 물리적으로 만들어내려 한다고 해서 생겨나는지 않는다. 이점이 바로 빈티지 의류가 지낸 가치이자 멋의 핵심이다.  

빈티지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최근 남성복의 글로벌 트렌드는 일본식으로 아메리칸 캐주얼룩을 해석한 아메카지(アメカジ)다. 이 책의 번역가이자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은 아메카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960년대 일본에서 미국 캐주얼 패션이 유행하면서 시작된 아메리칸 캐주얼룩을 뜻하는 말로 일본 내에서 몇 십 년 간 마니아 문화와 대중적 유행을 반복하며 토대를 단단히 다진 문화다. 그러던 중 80년대부터 빈티지 옷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재현하는 쪽으로 발전했는데, 이들의 독특한 스타일은 새로운 것에 찾던 구미의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이들의 문화와 스타일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 역수출되어 랄프 로렌의 아메리칸 빈티지 캐주얼 브랜드 더블알엘(RRL)이나 리바이스의 리바이스 빈티지(LVC) 등의 복각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 후 2000년대 유럽 하이앤드 패션의 쇠퇴와 맞물리며 스트리트 패션이 최첨단 트렌드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급부상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다. 패션이자 문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커버낫이나 스펙테이터 같은 복각 브랜드들이 등장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메카지 브랜드들은 앞서 언급한 빈티지의 기준에 해당하는 옷의 디자인은 물론 원단부터 봉제까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하거나 모티브를 얻는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며 당시의 무드와 헤리티지를 강조한다. 옛날 방식을 따라하지만 그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코스프레와는 전혀 다르다. 요즘 남자들이 빈티지와 아메카지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스콰이어>의 기사를 인용하자면 ‘남성적 스타일을 갈망하던 갈 곳 없는 남자들’을 위한 멋이 있기 때문이다. 꾸몄다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빈티지가 품었던 그 당시의 낭만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를 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브랜드들은 ‘잇 아이템’, ‘머스트 헤브 아이템’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유행에 상관없이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장인 정신에 입각한 만듦새,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킨 고집스런 역사와 정신 같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내세운다. 지독한 불경기에 셔츠 하나에 적어도 20만원씩은 하는 옷을 입으면서도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티를 내지 않는다. 요즘 남자들이 좋은 옷을 산다는 건 브랜드의 전통이나 기술을 사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런 소비를 통해 빈티지가 전달하는 문화를 즐기며 정체성을 가꿔가는 자기만족적인 행위다. 다시 말해 빈티지와 아메카지는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해 꾸미기 시작한 남자들을 위한 패션이다. 

그래서 아메카지 브랜드들은 빈티지 원본을 수집하고 연구한 다음 얼마나 정성들여서 그때의 낭만을 담아내는지를 통해 승부를 본다. 제품의 품질은 물론, 얼마나 많은 아카이브를 갖추고 ‘진짜’를 다루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 빈티지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아왔는지가 이런 브랜드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빈티지 맨즈웨어》는 이런 시대에 등장한 국내 최초의 빈티지 전문서적이자, 남성 패션 트렌드와 역사의 기본을 읽을 수 있는 입문서다. 

남성 복식사에 있어 꼭 보아야 할 클래식 빈티지 의류 129벌을 
300여장의 화보로 담아내다

런던에 자리한 ‘빈티지 쇼룸’은 이 책의 저자이자 35년 경력의 빈티지 컬렉터 더글라스와 로이가 2007년에 차린 빈티지 남성복 매장이다. 이들의 빈티지 아카이브는 빈티지 쇼룸의 간판을 내걸기 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면서 정리가 잘된 곳으로 유명했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코벤트 가든 매장과 달리, 노팅힐에 위치한 아카이브 매장은 20세기 초반 모터사이클 자켓 컬렉션이나 데님 작업복 컬렉션, 영국 전통 의복 컬렉션 등을 갖춰놓고 철저히 패션 디자이너 및 전공자들에게만 한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판매는 물론, 사진과 스케치도 철저히 금지되지만 옛 의류에서 영감을 받거나 복각에 관심 많은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찾아와 요금을 지불하고 옷의 디테일과 재단을 오로지 눈으로만 담아간다. 랄프  로렌, 버버리, 제이크루 등 대형 브랜드 디자인팀이 수시로 찾아와 재봉이나 단추 구멍에 대해 연구를 하고, 바버나 벨스타프 같은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초창기 의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때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책은 런던에 가지 않고도 빈티지 쇼룸의 비밀스럽고 진귀한 컬렉션을 만나 볼 수 있는 색다른 입장권이다. 더글라스와 로이는 1940년대 비행 재킷, 극지 탐험용 슈트, 프랑스 데님에 이르기까지 희귀하지만 반드시 봐둬야 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빈티지 의류 129벌을 선별해 소개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옷들은 더글러스 건과 로이 러킷의 할아버지, 혹은 증조부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오늘날 남성복의 원형 그 자체다. 
이 책은 크게 스포츠웨어, 워크웨어, 밀리터리웨어로 나누어 콘셉트와 형태, 재단에서 획기적이었던 옷들의 앞뒷면과 디테일을 큼직큼직한 300여장의 사진을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이러한 구분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남성복 디자인에 널리 깔려 있는 풍조로서, 기능성을 더 따지는 남자들의 성향을 반영했다. 

남성복의 원형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는 전문적인 패션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와 여러 정보도 쏠쏠하다. 디자인과 디테일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는 모든 옷들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빈티지가 유행하면서 요즘 각광받는 해리스트위드나 벤틸 원단(169p, 170p, 215p) 등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빈티지 쇼룸의 주인장인 더글러스와 로이와 함께 영국의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인 조시 심스가 요즘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버나 칼하트, 글로버올과 같은 의복 브랜드의 변천사(44~49p, 71p, 119p, 130p, 277p)를 들려주고, 당시 시대상에서 이런 옷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19p, 102p,115p 281p)를 살펴본다. 구입한 손님에게 들은 정보(87p)나, 몇 해에 걸쳐 추적해 2000만 원 이상을 주고 구입한 어설라 슈트(126p)와 같이 귀한 옷들을 보여줄 때는 아직도 흥분이 남았는지 바로 옆에서 수다를 떠는 듯하다. 

요즘 남성들이 패션에 관심을 갖는 건 단지 멋 부리기 위함이 아니다. 특정한 문화와 역사를 향유하면서 자신의 취향과 자아를 드러내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남성들에게 진짜 사나이의 채취가 가득한 《빈티지 맨즈웨어》는 좋은 선물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 : 더글러스 건 & 로이 러킷 Douglas Gunn & Roy Luckett
빈티지 쇼룸의 주인이자 큐레이터. 더글라스와 로이가 2007년 의기투합해 만든 빈티지쇼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며 잘 정리된 것으로 유명하다. 1년에 몇 달씩 전 세계의 탄광, 창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면서 진귀한 빈티지 의류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타임즈>는 그들이 운영하는 빈티지쇼룸 웹사이트(www.thevintageshowroom.com)를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웹사이트 50선에 꼽으며 패션 역사가의 꿈이 실현되는 곳으로 소개했다.   

저 : 조시 심스 Josh Sims
<아레나> 전 스타일 에디터 출신의 패션 칼럼니스트. BBC의 패션 프로그램 진행자로 대중에게 알려졌다.<파이낸셜타임즈><인디펜던트><에스콰이어><월페이퍼><GQ> 등 다수의 매거진에 칼럼을 기고했다. 패션, 음악과 관련한 여러 책을 기획했으며 타센 출판사의 필자이기도 하다. 패션, 스타일, 서브컬처를 다각도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패션계 인사다. <더 스트리트 북: 거리의 문화를 담은 패션 브랜드 40> <맨즈스타일의 아이콘><패션 디자이너 사전>등의 책을 썼다.

역 : 박세진
자유기고가이자 번역자.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이후 패션 방송과 음악 웹진 등의 분야에서 일을 했다. ‘패션붑’이라는 패션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비정기 문화 잡지 <도미노>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주로 패션과 문화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 

225*265mm
304페이지, 양장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