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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realism vol.1

Analrealism 편집부

(서울생활)


<Analrealism>은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창간한 잡지-단행본이다. 후장사실주의는 1960년대 남미의 시인들이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만든 밑바닥사실주의infrarrealismo의 멤버였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자신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밑바닥사실주의를 내장사실주의visceralrealismo로 패러디한 것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용어로 통일된 이념이나 공유하는 철학이 없는 일종의 문학 그룹이다. 


<Analrealism> vol.1에는 소설과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으며 작가들은 각자 쓰고 싶은 것을 썼다.


소설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요 8

박솔뫼·이상우

홍학이 된 사나이 28

오한기

사랑 134

유리 올레샤 | 홍상희 옮김


인터뷰

백민석,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148

후장사실주의자들과의 인터뷰


아넥도트

신나는 친구들 198

다닐 하름스 | 박하연 옮김·김수환 해설


페이퍼시네마

해변의 백가흠 220

오한기·정지돈

신형철의 칭찬합시다 232

오한기·정지돈

골목대장 이준규 246

오한기·이상우·정지돈


비평

오늘만 사는 남자 258

금정연

인용-텍스트 274

강동호

『analrealism vol. 1』에 붙이는 짧은 글 284


‘analrealism’은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창간한 잡지-단행본이다. 후장사실주의는 1960년대 남미의 시인들이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만든 밑바닥사실주의infrarrealismo의 멤버였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자신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밑바닥사실주의를 내장사실주의visceralrealismo로 패러디한 것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용어로 통일된 이념이나 공유하는 철학이 없는 일종의 문학 그룹이다. 

analrealism vol.1 에는 소설과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려 있으며 작가들은 각자 쓰고 싶은 것을 썼다. 아래는 후장사실주의와 후장사실주의자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이다.


뉴질랜드 여행

- analrealism vol. 1에 붙이는 짧은 글 


정지돈


수요일이었다. 6학년이던 나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준비해. 우린 토요일에 뉴질랜드로 떠날 거야." 나는 준비를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뉴질랜드에 관한 책을 샅샅이 찾아 읽었다. 토요일이 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뉴질랜드가 언급되는 일조차 없었다. 그날도, 그 다음 날도. 


막스 에른스트는 뉴욕에 있을 당시 약속을 잡지 않았다.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떡합니까. 약소 장소에 나가기 싫으면 어떡하죠. 그는 누구를 만나게 될 지 상상하면서 매일 같은 까페에 죽 때리고 있었다. 그는 늘 만나게 되는 사람과 만났다. 


미술을 전공한 지인인 이상민은 조만간 은퇴전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전시를 한 적이 없고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그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게 좋다고, 왜 꼭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해야 하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은퇴전은 왜 하는 거지. 이상민은 은퇴전을 할 걸 생각하면 좋다고 대답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우리를 완벽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해낸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후장사실주의가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에게 후장사실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그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이런 이상한 이름의 ‘주의’가, 딱히 도움도 되지 않고 욕만 먹는 ‘후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주의’가 지속되어서 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장사실주의는 농담에서 시작됐고 농담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됐다. 그 사이에 어떤 사람은 소설을 썼고 어떤 사람은 결혼을 했고 어떤 사람은 책을 냈고 어떤 사람은 자기혐오에 빠졌다(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날 금정연이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에서 한 구절을 보여줬다. 지속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구절을 이해하지 못했다. 희망하지 않고 어떻게 지속한단 말인가. 지속하기 위해서 없는 희망도 만들어내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데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사람 진을 빼다니.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후장사실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설마 이게 초현실주의처럼 된다거나 후장사실주의로 인해 돈을 번다거나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진다거나 하는 희망은 전혀 없다. 그런데 후장은 3년 넘게 흘러왔고 사람들이 모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지난 세기의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그들은 모두 희망광이었다. 자연주의자, 미래주의자, 구성주의자, 초현실주의자, 상황주의자 등등. 그들에겐 비관적이든 낙관적이든 망상이 있었다. 당시에는 망상인지 몰랐을 뿐이다. 지금은 아무도 망상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망상을 가질 권리를 잃었다. 너무 많은 실패와 너무 많은 좌절과 너무 많은 변절을 봐왔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주장하는 걸 우습게 생각하거나 거짓 주장을 한다. 이상우는 고다르의 <아워뮤직>을 보고 내게 말했다. 쇼트와 역쇼트. 역사는 결국 변증법인가. 쇼트와 역쇼트. 나는 그건 모르겠으나 쇼트와 역쇼트가 좋다. 쇼트와 역쇼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창비와 문지. 경향과 중앙.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 내장사실주의와 후장사실주의. 홍상수와 김기덕. 정성일과 유운성. 이인성과 정영문. 신경숙과 배수아. 백민석(절필 전)과 백민석(절필 후). 신형철과 금정연. 권희철과 강동호. 박솔뫼와 이상우. 정지돈과 오한기. 박훌요와 김준언. 황예인과 홍상희. 또는 그 반대. 또는 새로운 조합.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 마지막 상영을 박솔뫼, 이상우, 홍상희와 함께 보기로 했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셋을 기다렸다. 영화상영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좌석은 매진 됐고 우리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게 후상사실주의인가. 오한기와 이상우는 신사동에서 만나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 금정연과 상수에서 만나 중국에 대해 얘기했다. 금정연과 정영문의 집은 지리적으로 유사하다. 나는 극장에서 정성일과 유운성을 우연히 만났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쇼트와 역쇼트. 


다시 고다르의 영화. <필름 소셜리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상은 우리를 나누고 꿈은 우리를 합친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인용이다. 문학은 세계의 인용이다. 나는 인용을 금정연에게 배웠다. 쇼트와 역쇼트. 후장사실주의는 문학의 인용이다. 그러므로 후장사실주의는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다.




155mm * 227mm

288쪽 하드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