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토마스 홈바흐(Thomas Hombach)가 5년 이상 수집한 사물들: 일상도구로 전환된 1+2차 세계대전의 전쟁도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빗발치며 사람과 건물을 파괴했던 대공포탄은 재건을 위한 담장을 쌓기 위해 고요하게 수직으로 늘어뜨린 미장이용 균형추가 된다(표지사진 참조). 포탄 신관에 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하는 데 쓰였던 신관통이 다림질용 물뿌리개가 되기도 하고, 폭음과 화염을 유발하던 각종 전쟁도구들이 고요하게 빛나는 촛대나 조명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1+2차 세계대전 이후 궁핍과 폐허에서 생성된 사물들은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자체로도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예전에 지녔던 차가움, 죽음, 파괴, 시끄러움 등은 따뜻함, 생명, 재건, 성장, 고요함의 성질로 바뀌었고, 이 다른 성질들은 서로 대립하며 의미를 재배치한다. 그리고 변용된 모습을 통해 역사적 순환의 아이러니한 단면까지도 증언해 준다.
그러나 이 수집과 책이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기억하기 위해 기획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념이라는 것을 이 책이 무색하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왜냐면 여기 소개된 사물들은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역사적 회고나 기념, 기억의 보존보다는 ‘지금/여기’라는 “연속성”에 대해 말하기 위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홈바흐는 (불가능하겠지만) 작가적 시점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압축적인 팩트와 정보를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제목만으로도, 독자들이 이 사물들에 접근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편역자이자 디자이너인 라삐율은 이 사물들을 토마스 홈바흐의 글을 비롯, 여러 자료사진, 일러스트, 주석과 함께 엮어 소개하고 있다.
수집/글: 토마스 홈바흐
이 책이 소개하는 사물들을 수집하고 집필한 토마스 홈바흐는 드로잉, 회화, 오브제 조각, 설치, 비주얼 텍스트를 비롯한 글쓰기 등, 아날로그적 표현방식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을 구현하는 작가중의 한 명이다. 그 중 그에게 있어 가장 밀접한 방식은 드로잉이다. 그러나 그의 삶과 작업은 기본적으로 "수집"이라는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지어져 있다. 다양한 수집행위와 나머지 작업행위들은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때로는 수집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 되기도 하고, 글쓰기가 단어 및 아이디어, 텍스트에 대한 수집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그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발굴과 해석, 층의 생성 등은 여전히 그의 작업의 저변이다.
편/역/디자인: 라삐율
라삐율은 공연(무대/연출), 미술, 번역, 글쓰기 사이에서 자신의 분야를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왔다. 2006년~2011년까지는 번역/출판, 한-독 세미나 및 워크숍, 공연, 자료집 발행이 하나로 연결되는 다원적 탐사 및 창작을 장기적으로 기획/실행하던 퍼포밍 네트워크 'fatzer-project' 의 대표로 <팟저-나는 제자리에 없다>, <주운 고아>, <펜테질레아>를 상연했다. 2014년부터는 독립출판사 '이오-에디션'의 대표로 예술, 문학, 고대사 등 다양한 주제들이 교차하는 출판/펼침 프로젝트들을 실행해 오고 있다. 그밖에도 협업 형태의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독일과 한국에서 이어나가고 있다. 번역서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팟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 하이너 뮐러의 <프로메테우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