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21년 밤 풍경, 밤 얼굴 시리즈와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의 식물 드로잉 가운데 일부를 모아 만든 화집이다. 서로 어울리는 얼굴 하나, 식물 하나를 한 장에 마주하게 배열했다.
밤에 그어진 그림들
여름
2021년 여름은 한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더운 날씨 때문에 낮에는 집에만 있다가 밤이 되면 어둠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서 어떤 구간은 아주 깜깜하고 길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바라본 밤나무의 모습은 색의 화려함은 모두 사라지고 바람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검은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숙소에 돌아와서 밤의 나무와 밤 얼굴을 함께 그렸다.
겨울
겨울 한강의 풀을 바라보면 그동안의 추위와 햇볕이 식물을 뒤틀고 말려버린 독특한 형상들이 드러난다. 연약하고 견고한 형상들, 자신의 질서를 벗어나는 생경한 움직임이 새겨져 있다. 밤에 그리는 그림은 낮에 그리는 그림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고요하게 잠들고 소리도 줄어들어서 오롯이 그림과 나 둘만이 남는 기분이 든다.
작가 소개
엄유정
엄유정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회화 매체를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작가는 주변 환경의 시각적 경험을 회화, 드로잉 형태로 풀어낸다.
개인전으로는 2023년 《Three Shapes》(에이라운지, 서울), 2021년《밤 긋기》(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갤러리, 서울),《FEUILLES》 (소쇼, 서울), 2013년《Þögult andartak》(리스투스, 아이슬란드) 등이 있으며 단체전으로는 2023년《원형정원 프로젝트 연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2년《어떤 삶, 어떤 순간》(금호미술관, 서울),《소란한 여름, 햇살에 기대어 서서》(우민아트센터, 청주), 2018년《IN_D_EX 인덱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등이 있다. 2022년 스코틀랜드 글렌피딕 아티스트 레지던시, 2020년 경기창작센터, 2013년 아이슬란드 리스투스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에 참여했다.